[칼럼] 도서관 책 사이에 숨겨진 '사서'의 인권
* 이 글은 경향신문 <세상읽기>에 연재된 칼럼(2019.11.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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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 사이에 숨겨진 '사서'의 인권
-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도서관은 누구나 쉽게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곳이다. 때론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모임 공간이다. 국가와 도시별로 차이가 있지만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해결 공간 역할도 한다. 이런 이유로 외국 도서관에는 직업상담사나 사회복지사가 배치된 곳도 있다.
도서관 사서 업무는 매우 다양하다. 대출 수납이 주 업무가 아니라 도서관 기획·운영 전반이 핵심 역할이다. 암호 같은 분류기호를 외워 이용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재분류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견학, 독서의달, 체험행사, 북스터디 등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맡고 있다. 사실 도서관 사서의 핵심업무 중 하나는 장서점검이다. 대출반납 소장자료 목록과 실제 도서관 자료 간의 일치 여부, 자료 폐기, 장서 재배치 등의 업무가 장서점검인데, 어떤 곳은 이조차 수행 인력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과도한 성과평가 때문에 구축제, 동축제, 마을축제까지 참가해야 한다.
현재 공공도서관 1042곳에는 사서 2만7447명이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사서가 없는 곳도 50곳에 달한다. 문제는 도서관 사서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도서관 연장개관 인력은 계약직으로, 주말은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른 전문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초단시간 고용도 특이한 현상이다. 아무리 예산 부족 때문이라지만 실업급여도 못 받는 초단시간 사서가 11%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문헌정보학과를 나와 사서로 취업하면 187만7000원의 월급을 받는다. 최저임금보다 고작 10만원 더 많은 셈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10명 중 4명은 고용불안과 저임금 탓에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공공도서관 사서의 평균 근속기간은 4~5년에 불과했다.
문제는 도서관 사서의 인권침해와 부당대우인데, 2019년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특히 비민주적 조직에서나 나타날 법한 현상들이 도서관에서는 일상화돼 있다. 대표적으로 재단이나 종교법인의 행사 차출(45%), 합리적 이유 없는 업무 재배치(27.8%), 연령(20.6%)이나 비정규직(20.6%)에 대한 부당대우 등이다. 수탁 기관 변경과정에서 불이익 발생은 다반사이고, 사서의 81%가 여성인데 육아휴직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직영 도서관에 비해 민간위탁 도서관에서 더 심각하다. 위탁 도서관에는 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은 자가 관장을 맡고 있는 곳도 있다.
게다가 일상적으로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과 대면하다 보니 감정노동도 심각하다. 이용객으로부터의 폭언(67.9%), 성희롱(14.9%), 괴롭힘(48.4%)은 심각한 수준이다. 소위 ‘1급 진상’ 때문에 경찰이 출동할 정도의 소란도 가끔 발생한다. 그럼에도 민원이 들어오면 항상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말만 되풀이하도록 한다. 이용자에게 극존칭을 쓰게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하는 등의 저자세 서비스 강요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관료주의의 폐해를 보여준다.
지역마다 꼭 1명씩 있는 기초의원이나 지역 유지들로부터의 ‘갑질’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민간위탁 법인 대표가 사서들을 모아 놓고 진행하는 회의들도 문제다. 매월 1회 법인 재단 대표의 낭독훈화는 애교에 가깝다. A종교법인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는 아직도 사서에게 자발적 후원(?)을 강요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항상 ‘주민들을 위해 함께하자!’는 말은 오랜 시간 동안 사서의 인권침해를 은폐시키는 요인이다.
몇 년 전 영국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이용한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이는 전문가 못잖은 지식을 갖춘 ‘사서’였다. 사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자료 제공만이 아니라 연관 자료 목록까지 추가로 전달해 주었다. 반면 국내 공공도서관은 마법과 같은 고용법칙이 존재한다. 정규직 사서와 비정규직 사서, 그 외 보조인력(자원봉사·공공근로·대체복무요원 등)이 각각 3분의 1의 비율로 활용된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전문적인 서비스는 불가능하다. 그간 문체부와 지자체, 도서관협회와 대학 교수, 그 누구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라도 도서관 책 사이에 숨겨진 사서의 인권을 되짚어봐야 한다.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312046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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