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 삼성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경영대학에 적(籍)을 두고 있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게다가 일부 학생들은 그곳에 취업하고 싶어 하니 삼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삼성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담당하는 노사관계나 인사관리, 그리고 기업윤리 어느 과목에서든 그렇다. 삼성에 대해서 칭찬할 거리를 찾기가 어려운 반면 비판할 거리는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번 참여연대 주관으로 ‘삼성을 감시하다’라는 토론회를 진행할 때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활동가가 “우리는 삼성제품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때도 나는 진심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삼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대학에서도 쉽지 않다. 심지어 어느 순간 자기검열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삼성이 세계적 대재벌로 자리 잡은 데에는 그럴만한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제 발 잡기도 작용한다. 나의 자기검열과 제 발 잡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삼성을 비판할 실증자료가 별로 없다는 점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삼성이 반노조 경영이념을 가지고 있고 사주(社主)의 경영철학이 무노조 경영이라는 것은 누구나 얘기하는 상식이지만, 그러한 경영이념과 경영철학을 적시한 문건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나에게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문건은 삼성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비판해야 하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 불법행위를 적극 범할 것을 천명하다
이 문건은 삼성에버랜드 노동조합 결성과 더불어 작성된 후 법정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의 평사원이나 일선 관리자를 대상으로 작성된 문건이 아니었다. 삼성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은 삼성재벌 최고위 경영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자료였다. 이 문건은 삼성 반노조 경영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누구나 어느 장소에서든 거리낌 없이 삼성의 경영이념과 경영철학이 부도덕하고 불법적임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문서의 값어치는 말로 다할 수 없어서 이제 곧 영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회람될 것이다.
이 문건을 보면 삼성은 노동법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동법은 부당노동행위를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다. 근로자가 노동조합에 가입 또는 가입하려고 하였거나,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하였거나, 기타 노동조합의 업무를 위한 정당한 행위를 하였을 때 이를 이유로 그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용자의 행위는 불법이다.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와의 단체협약체결, 기타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사용자의 행위도 불법이다. 사용자가 노동조합 조직과 운영에 개입하거나 지배하는 행위도 불법이다. 그러나 이 문건에서 삼성은 이러한 불법행위를 적극적으로 범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윤은 많이 내지만 사회적 책임은 부인하는 삼성
해당 문건에 따르면 삼성은 노동조합 설립단계에서 주동자를 즉시 해고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당노동행위 회피를 위해 노조설립 전에 주동자를 징계해고할 것을 권한다. 삼성다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삼성은 ‘문제 인력’이 외부 세력과 연계하여 노조를 설립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여 문제발생 소지를 원천적으로 해소할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노조 설립 시 주동자들을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사실에 대한 채증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라고 권한다. 삼성답다.
삼성은 “임직원들이 전혀 흔들림 없이 비노조 경영철학을 견지할 수 있도록 정신교육을 강화”할 것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교육내용 및 교재는 부당노동행위에 따른 제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지시하고 있다. 삼성답다.
삼성은 노조가 있는 그룹사에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 경우 기존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근거로 신규노조와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기존노조를 통해 신규노조 해산을 추진할 것임을 적시하고 있다. 더불어 삼성은 노조가 없는 그룹사에 노조가 설립되면 회사의 전 역량을 집중하여 조기와해에 주력하고 이게 여의치 않을 경우 ‘친사노조(친 회사 노조)’ 설립 등의 방식을 동원하여 와해시킬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삼성답다.
이와 같은 삼성의 반노조 경영이념과 경영철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기준에도 정면으로 위반된다. 삼성은 세계에서 이윤을 가장 많이 내는 기업 중 하나인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부인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노조와의 전쟁을 포기할 때까지 삼성을 감사하라
삼성의 반노조 경영이념과 경영철학은 불법적인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은 노동조합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현장관리자, 법무․홍보 부서장 2만 9천명을 대상으로 특별 노사교육 및 ‘모의훈련’을 실시한다. 종업원 가운데 방호인력, 노조활동 대응인력, 여론 주도인력 등 사내 건전인력을 선정하여 주기적으로 모의훈련 및 심성관리를 실시한다. 사내건전 인력의 지속적인 신뢰 유지를 위해 이들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명단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점조직으로 운영한다. 방호인력은 외부세력의 사업장 ‘침투’ 시 방호에 동원되며, 사전 명단을 확보한 후 유사 시 부서장을 통해 연락 및 구성되고, 사전 양성교육 대신 유사시 집결 장소에서 신속하게 교육을 실시한다. 삼성은 노동조합과의 전쟁을 위해 인사부서의 ‘실전’ 대응 역량을 강화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가 나무를 고사시켰듯이 삼성은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고사시킬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렇듯 삼성은 노동조합과 전쟁을 치르기 때문에 인륜이나 도덕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삼성은 더 이상 민간 재벌 중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국내 무역수지 흑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전체 주식 가치의 절반을 차지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 국가의 공적영역에 진입한 재벌이다. 국정감사는 국가기관이나 국영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이들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훨씬 큰 삼성은 분명한 어조로 반노조 불법행위를 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 대상에서 빠지고 있다. 이제 국회나 감사원은 삼성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전쟁을 선포한 경위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삼성이 전쟁을 포기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