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하고 처음 20일 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할 때 드는 40~80kg의 물건(롤러)이 무거워서 허리와 가슴이 아팠습니다. 특히 척추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공장장님의 허락을 받고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간다고 하면 보내주기는 하는데 욕을 했습니다. (중략) 사장님을 만나서 “도와주세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정말 힘들어서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화가 나서 이런저런 욕을 하며 방글라데시로 돌려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사장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중략) 공장장님이 다른 공장으로 옮기고 싶냐고 물어봤습니다. 우리는 사장님 사인이 있으면 다른 공장으로 옮길 수 있다고 했고, 또 옮기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공장장님이 오늘 사장님이 사인해줄 거라며, 기숙사에 가서 짐을 싸고 1시간 안에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후 공장 사무실로 가보니, 공장장님이 방글라데시 대사관이나 한국 노동부에 전화해서 사업장 변경 팩스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중략) 6월26일에 무슨 내용으로 팩스를 보냈냐고 물어보니까 사업장 이탈신고를 했다고 했습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건데 왜 그랬냐고 물어봤습니다. 회사 직원은 우리 둘 다 회사직원이 아니라며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다시 7월2일과 3일에 공장에 가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우리는 직원이 아니라며 경찰을 부른다고 하고 직원으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다. 불과 몇 달 전 사례로 이주노동자가 일이 너무 힘들며 아프다고 이야기하자, 사업주는 본국으로 돌아가라며 사업장 이탈신고를 한 사례다. 사건 직후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찾아와 진단서 등을 첨부하여 고용센터에 사업장이탈신고가 부당하다는 진정을 넣고, 사업주와 다른 회사로의 사업장변경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보듯 노조 활동가가 아닌 이주노동자 개인이 사업장에서 있었던 문제를 입증하고 해결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이것이 2014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다.
10년째 제자리걸음하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이 취업을 위해 집단으로 한국에 들어온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제도 역시 수차례 개정되고 대체되었다. 특히 2004년 8월17일에 시행된 고용허가제도는 올해로 시행 10년째를 맞이하는데,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 시행 1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연이어 개최하면서 “고용허가제야말로 다른 나라의 모범사례가 될 만한 성공적인 이주관리시스템”이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그 근거로 국제기구에서의 수상 경력과 자체 설문조사를 통한 높은 수준의 사용자, 노동자 만족도를 들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정부와는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어떠한 권리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오로지 오랫동안 일을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변질되어 이주노동자들이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을 하더라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는 기형적인 제도가 됐다. 또한 ILO(국제노동기구), UN(국제연합) 등 국제기구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고용허가제에 대해 수차례 개선을 요구하였지만, 한국 정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무시한 채 오히려 사업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악해나가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고용허가제는 ‘합법적 인종차별’, ‘권리보장 없는 강제노동’ 등 “현대판 노예허가제”로 불렸던 산업연수생제도와 유사한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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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의 주요 문제>
▢ 사업장 이동의 제한
: 사업장의 근로조건이 열악해도 정부 차원의 사업장 근로감독과 근로조건 개선노력은 전무하고, 사업장 이동도 제한되어 있음. 그 결과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주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강제근로를 조장함.
▢ 단기순환의 원칙 (임시노동자 처우)
: 고용허가제를 통해 10년간 체류 하더라도 임시노동자로서 불안정한 지위를 가지며 정주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함. 가족초청이나 동반 역시 원천적으로 봉쇄됨.
▢ 불안정한 체류자격으로 인한 취약한 노동권리
: 고용주가 동의해야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경우가 많고, 체류연장이 보장되는 상황임. 따라서 고용주는 근로조건을 개선하지 않아도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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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체류는 왜 나타나는가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하면 정해진 체류기간을 채우고 나서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음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고용허가제는 합법적 체류 기간 내에서도 고용주의 마음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자격을 얼마든지 박탈할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인 H씨가 K섬유에 입사하여 일을 한 지 약 1개월 후 회사에 일감이 떨어졌다. 고용주는 H씨에게 “일이 없으니 다시 부를 때까지 집에 가서 쉬라”고 하였다. H씨는 사업주의 말에 따라 간헐적으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기다렸다. 그러다 비자만료일이 임박하게 되어 H씨는 사업주와 함께 고용센터를 찾아 근로계약과 체류비자를 연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고용센터에 가보니 자신이 미등록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주는 H씨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이야기 한 후 근로계약해지 신고를 하고도 H씨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이다.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근로계약해지 후 1개월 이내에 사업장변경 신청을 하지 않으면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결국 H씨는 미등록체류자가 되었다.
이 밖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내 폭행, 폭언, 임금체불 등을 견디다 못해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어도 고용허가제 아래서는 사업주의 허락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결국 사업장 내 문제를 입증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사업장에서 도망치는 것 뿐이다. 특히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이탈율은 2014년 6월 현재 36.4%에 달한다. 배 위에서 상시적인 폭행과 폭언을 겪다가 배가 육지에 도착했을 때 도망치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를 알리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퇴직금도 ‘강탈’하는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 10년의 역사 속에서 제도가 변화할 때마다 항상 1순위로 등장하는 개정의 근거는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7월28일부터 시행된 출국만기보험 개악안(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 제도)이다. 정부는 지난 2014년 1월에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포했다. 주요 내용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주는 퇴직금을 출국 후 14일 내에 지급한다는 것이다. 퇴직금을 미리 지급하면 미등록체류가 늘어나니, 본국에 돌아갔을 때 지급하면 미등록 체류자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10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은 퇴직보험금의 형식으로 사업주가 월 통상임금의 8.3%를 삼성화재보험에 적립하면, 퇴사나 사업장 변경 시에 기본급 기준의 퇴직보험금(출국만기보험금)을 받아 왔다. 하지만 출국만기보험금은 기본급을 기준으로 하기에 연장근무나 특근 등으로 인한 실제 퇴직금 액수와는 차이가 난다. 따라서 차액을 따로 사업주에게 청구해야 하는데, 출국 후에 보험금을 받으라는 것은 차액을 청구할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본국에서는 금융제도의 차이, 수수료, 환율 등으로 인하여 보험금을 온전하게 수령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주노동자 대부분의 반응이다. 심지어 출국만기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을 경우 본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도 근로기준법 제36조는 근로자가 퇴직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 조건에 차별을 두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이주노동자 공동체와 이주노조 등을 비롯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지난 4월에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회 앞 1인 시위, 기자회견, 집회, 온․오프라인 서명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한국정부의 인종차별적 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투쟁을 진행했음에도 7월28일부터 이 제도는 시행되었다. 따라서 이후 이주노동자들이 실제 출국 후 퇴직금을 제대로 수령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과 피해 사례 접수 등을 통하여 고용노동부에 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문제제기할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도 한국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출국 후 14일이 아닌 퇴직 후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수령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동일하게 적용받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하반기 내에 반드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고용허가제의 근본 대안은 무엇인가
사업장 변경의 권리, 권리구제, 퇴직금 등 기본권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개정되어 왔던 고용허가제를 일부 개선하는 것으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다. 따라서 고용허가제의 제도적 한계를 넘어 대안적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1)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은 열악한 이주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한 필수적인 요구다. 자신의 노동력 제공 여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처지에서 기본적인 권리 보장은 불가능하다. ‘국익’이라는 논리로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제약을 가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따라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2) 5년 이상의 기본적 체류 기간 보장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사업장 내 학대의 관행은 이주노동자들의 체류 기간 제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속적인 필요성으로 인해 현행 법률이 5년 이상 체류를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류 기간 제약은 비현실적인 규제다. 정부는 오로지 이주노동자들의 정주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단기체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5년 이상 체류할 경우 합법적으로 정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우선 적용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등록 이주노동자든지 미등록 이주노동자든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보다 현저히 낮은 임금을 받는 동시에 부당한 차별을 겪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는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이주민에게 우선 적용돼야 한다. 단속 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합법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4) 노동관계법, 사회보장법 적용
수년 동안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민자로 봐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그에 걸맞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을 적용해야 하며, 비자 유형에 따라 노동법을 적용하는데 있어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5) 차별금지 실효성 보장
차별금지의 실효성을 보장하려면 대안 제도 자체가 차별을 최대한 해소해야 한다. 현행 고용허가제법도 조항에 차별금지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고용허가제 법률 자체가 차별적이기에 모순일 뿐만 아니라 차별금지 조항 역시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또한 작업장 내 차별은 학대 수준으로 심각한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차별에 맞설 수 있도록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결사의 자유, 노조 가입 및 노조 결성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6) 가족 동반 허용
가족 동반 금지는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본국의 가족과 만날 권리 자체를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부족한 휴일수로 인해 가족을 만나러 본국에 출국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가족의 자유로운 왕래나 동반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
(7) 언어 교육 및 통역 지원 대폭 확대
언어는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욕구, 상태, 위험 등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언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고 통역 지원도 대폭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