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금속산별의 조직체계와 교섭구조

노동사회

새 금속산별의 조직체계와 교섭구조

편집국 0 2,235 2013.05.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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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6년 8월23일 (수)요일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발표: 김승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토론: 한석호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 집행위원장
사회: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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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문 원문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홈페이지(
www.klsi.org)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

사회자: 제47차 노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발제를 해주실 분은 우리 연구소 김승호 연구위원입니다. 김승호 위원은 금속노조 창립 시기부터 정책을 담당했었고 이번 완성차노조 산별전환 과정에서도 관여를 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민했던 것들을 오늘 정리해서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토론을 해주실 분은 금속연맹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고, 김승호 위원과도 서로 잘 알고 지내시는 분입니다. 한석호 전진 집행위원장 오셨습니다. 토론자들을 더 모시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한석호 의장님께 부담을 드린 꼴이 돼서 죄송합니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 발표 ]

forum_01.jpg김승호: 완성차 노조를 중심으로 한 금속연맹 산별전환 사업이, 전환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현장의 모든 동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통합 금속산발노조의 앞날을 두고 벌써부터 이러저런 우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일단 가자!’는 합의와 침묵의 담합구조 아래서 숨죽이고 있던 정파 간 주도권 싸움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그래서 앞으로 진행될 논쟁은 ‘조직체계 및 교섭구조 설계’ 등 당면현안의 실질적인 내용이 아니라 ‘물밑 권력경쟁’을 중심으로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입니다. 물론 올해 임단투가 길어졌다는 점도 고려해야겠지만, 각 노조와 정파들이 아직도 통합 금속노조의 조직 및 교섭 체계에 대한 자신들의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 이러한 우려를 더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10월 말로 예정된 금속연맹 해산 및 통합 금속산별노조 출범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도 시간이 매우 촉박합니다. 이 발표문이 제시하는 주장이, 반박이 됐든 보완이 됐든, 구체적인 논의들을 촉발해 통합 산별노조의 ‘그림’을 뚜렷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결을 요구하는 높은 찬성률

구체적인 주장을 제시하기에 앞서 답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찬성률이 높았을까요? 완성차 대공장조합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금지조항이 기업별노조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정리해고 경험과 향후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및 그로 인한 고용불안 심리, 회사 측의 ‘무대응’ 등을 투표를 하는 데 영향을 준 객관적 요인으로 꼽을 만할 겁니다. 그러나 이는 산별전환 투표 직전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존재하는 경향들이거나 주변적인 요인이었습니다. 따라서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을 조직의 단결로 전환시켜낸 ‘주체들의 노력’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동안 완성차 대공장노조들에서 산별전환이 이뤄지지 못 한 원인으로, 정리해고 경험에 기반한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의식, 그리고 한편으로 실리주의를 우려하면서도 거기에 편승해 있는 현장조직들의 치열한 권력경쟁 구도가 꼽혀 왔죠. 즉, 이미 오래전부터 현장에는 미래의 불안감을 야기하는 객관적인 상황이 존재했지만 대안을 제시해야 할 현장조직들은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실천보다는, ‘누가 더 조합원의 실리주의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를 두고 경쟁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번 완성차의 산별전환 과정에서 노동조합 핵심주체들이 보였던 모습은 예전과 무척 달랐습니다. 물론 “묻지마 산별총회”라며 절차상 문제제기를 했던 현장조직이 일부 존재하기는 했어도, 이번에 완성차노조들의 산별전환 사업은 최근 유례없이 통일되고 촘촘하게 전개됐습니다. 집행부의 ‘강한 의지’와 집행부 밖 현장조직들의 ‘통일된 목소리’는 산별사업의 효과를 배가시켰죠. 거의 모든 조직들, 특히 현재 집행부가 앞서서, “기업별노조 체계에서는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문제,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산별노조로 전환해야만 우리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조합원들을 ‘협박’하는 담합구조를 만들어냈고, 조합원들이 이를 ‘승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승인은 눈앞에 닥친 구조적인 변화를 앞두고 집행부와 현장조직들이 단결하여 기왕에 존재했던 위기요인들을 ‘새롭게 규정’했고 이를 조합원들이 ‘수용’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조합원들의 수용은 산별노조에 대한 적극적 기대감일 수도 있고, 멍석 깔아줄 테니 해볼 테면 해봐라 식의 소극적 방어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둘 중 어디에 가깝든 간에 조합원들의 승인은 현장조직들의 행동통일이 없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조합원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변수는 바로 현장활동가들의 통일된 행동이라는 점이 이번 전환투표를 통해 새삼스럽게 확인되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향후 산별노조의 구체적인 상을 그려내고 활동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활동가들은 이를 의식하고 더욱 강화해야만 할 것입니다.   

준비기, 그리고 ‘과도적 권력’

이제 좀 더 구체적인 밑그림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먼저 ‘권력’의 문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통합 산별노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집행력과 주도권은 어떻게 구조화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첫째, 2006년 하반기 일정과 2007년 상반기 투쟁 준비의 문제입니다. 구체적으로 봅시다. 여름휴가 이후 예정된 금속연맹 해산까지는 겨우 두 달 남짓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 완성차노조들의 상황을 보면, 기아와 대우는 올 하반기 임원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쌍용은 1천여명 정리해고 통보에 맞서 ‘옥쇄파업’ 중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선거나 정리해고 저지투쟁이 낄 경우 사실상 모든 사업이 중단되는 게 다반사였죠. 완성차노조 중 통합 금속산별노조 차원의 2007년 상반기투쟁을 충실하게 준비할 수 있는 조건은 현대차노조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중앙에서 실무를 진행하는 데에도 매우 부담을 줍니다. 물론 과거 금속노조 건설 시기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산별소위원회를 건설해 한 달간 집중적으로 논의해 문제를 풀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당시하고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당시 산별소위원회의 역할은 이미 모든 실무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남은 쟁점들을 처리하는 것이었고, 그나마도 완결짓지 못 했어요.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 일정이 제출되어야 합니다. 방침만 정해놓고 각자 알아서 하는 관행이 용인될 수 없는 통합 금속노조의 입장에서, 새로 합류한 노조들의 어긋남은 단순히 기업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금속노조 전체의 문제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분의 불참이 전체가 죽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죠. 한편, 이런 조건 속에서 통합 금속노조 위원장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선이라도 하게 되면, 애초의 일정은 더욱 늦춰질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2007년 투쟁준비는 손 놓을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과정을 거쳤던 과거 금속노조의 창립시기에도 임단투 세부지침은 조직 창립 후 번갯불에 콩 볶듯 준비해야만 했던 경험을 상기해야 합니다.

둘째, 새롭게 출범할 금속노조와 기존 금속노조 사이에 놓인 6년의 편차 문제입니다. 즉 덩치 큰 완성차노조들은 ‘금속노조의 역사’를 의식적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중심에는 어떻게든 교섭구조의 집중화를 달성하려는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지향과 기업단위 교섭관성의 충돌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조정하는 과정을 어떻게 밟아갈 것인가, 그리하여 출범 첫해 완성차조합원의 기대감과 기존 금속노조 조합원의 기대감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를 세부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완성차노조 조합원들은 이타적 의지만으로 산별전환 투표를 가결시킨 것이 아닙니다. 통합 이후에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산별적 행동이 대립할 때 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죠. 대공장노조가 조합원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충족시키면서 주변으로부터 요구받는 책무를 수행하는 것은 결코 단시간에 이뤄지거나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장기간에 걸쳐 끊임없는 조합원 교육과 교섭구조 집중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하죠. 기존 금속노조의 경우를 보더라도 교섭구조를 집중시키는 데만도 3년 이상 걸렸을 뿐 아니라 기업수준의 요구는 별도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통합 금속산별노조 출범 이후 교섭구조의 단계적 집중화를 위해 교섭안건을 세부적으로 다듬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교섭은 원칙이 아니라 대상이 있는 구체적인 투쟁이고 거래입니다. 지금 우리의 준비상태를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위 두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첫 지도부는 경선 없는 임기 1년의 ‘과도 집행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험과 성격이 다른 조직의 새로운 결합, 조직정비 및 불충분한 투쟁준비 상태, 기대에 못 미칠지도 모르는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단위가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금속노조의 경우 산하조직에 대한 통제력이 강했기 때문에 그나마 상대적으로 짧은 준비기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으나, 통합 금속산별노조는 방침 몇 줄이 아니라 세부적인 과정을 치밀하게 밟아나가지 않으면 출범 첫해부터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긴 호흡을 갖고, ‘장기적인 계획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 것인가’를 중심으로 권력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도 집행부가 그러한 계획을 위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각 대안을 검토하기 위한 조건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조직체계와 운영 및 교섭구조의 상과 관련해 나올만한 대안들은 그동안의 내부토론 과정에서 이미 모두 거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대안의 제출이 아니라 그동안 거론된 것들이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명료하게 하는 것이라는 거죠. 그래야만이 좁은 권력투쟁의 맥락 속에서 각 대안들이 왜곡되거나 굴절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제출된 통합 금속산별노조 밑그림들은, ‘조직’은 기업과 지역, 업종 등을 축으로, ‘교섭’은 전국단위교섭(중앙교섭), 업종교섭, 지역교섭, 지회교섭 등을 축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을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조합비 배분 등이 더 논의되기도 하죠. 그러나 어쨌든 핵심은 교섭구조입니다. 교섭체계를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조직체계 설정보다 더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위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검토해봅시다.  
     
조직체계의 문제

우선 조직체계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세 개의 축, ‘기업’, ‘지역’, ‘업종’은 조직체계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상호 중첩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 속에서 완성차대공장노조를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가? 일단 가능한 경우들은 여러 가지일 겁니다. 먼저 현재 금속노조의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완성차노조에게는 ‘한시적’으로 기업지부라는 틀이 적용됩니다. 혹 기업지부 인정 없이 일괄 지역지부로 재편된다면 완성차노조는 공장별로 쪼개져, 각 공장들은 해당 지역의 중소업체노조들과 함께 하나의 지역지부를 형성하게 되겠죠. 여기에 업종본부가 어떻게 구조화될 것인가에 따라 더욱 다양한 전망이 열릴 수 있을 겁니다. 

조직체계를 구성하는 데 기준은 현재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투쟁과 교섭을 더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일 터입니다. 금속노조 연대투쟁의 전통을 발전시키면서 교섭구조도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방안, 이 균형점을 현실의 구체적인 조건을 꼼꼼히 검토하는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기존 금속노조의 경향대로 지역 중심의 조직 재편을 고려한다면, 기아차처럼 공장단위 본조가 아닌 경우, 자동차 판매나 정비처럼 조직이 전국에 군소단위로 흩어져 있는 경우, 이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투쟁과 교섭을 어떻게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인가에 현실적인 대답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이중 조직체계’를 제안합니다.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조직 배치는 지역 중심으로 하되, 교섭은 기업 혹은 부문 단위로 틀 짓자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금속노조 지연연대투쟁의 전통을 잇되, 지역 중심 조직재편에 대해 판매나 정비 쪽에서 우려하는 문제들을 피해가자는 거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든, 기아차 화성공장이든 해당 지역 차원에서 수행해야 할 정치사업, 연대투쟁 등은 규모와 구획에 상관없이 모두가 참여하고, 다만 교섭은 각각의 단위별로 수행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지역별 조직 집행부’의 위상과 ‘전략적 교섭단위(위원회) 지도부’의 위상이 부딪칠 수도 있겠죠. 따라서 기본적으로 골간은 지역이라는 점, 후자는 상시적인 ‘집행부’가 아니라 교섭에서만 기능하는, 그것도 금속노조 위원장의 위임 범위 내에서만 기능하는 단위라는 점을 제도적 방안을 통해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 구조의 제안은 기존 금속노조의 ‘한시적 기업별지부 인정 방침’의 모호성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금속노조의 방침을 거의 대부분 수행하는 만도지부에서 기업별지부로서 만도지부의 존재를 ‘한시적’이라 규정했던 결정을 이행하려는 순간, 근거 있는 현실적인 저항이 발생합니다. 대공장노조들이 기업별 보호막을 가감 없이 던져버리기에는 금속노조가 규모, 교섭구조 등에서 아직 산별노조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통합 금속산별노조에서 구체적인 조직운영과 교섭구조 등의 발전이 좀 더 ‘능동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구조로서, 이중 조직체계를 제안합니다.   

한편 일부 동지들이 ‘광역본부체제’를 조직구조로서 제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앙조직과 현장단위를 연결하는 경로는 짧을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지역 범위’의 기준은 지금 금속노조의 지역지부와 마찬가지로 행정구역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일상적 연대투쟁이 가능한 거리’여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광역본부체계는 현장과 중앙의 거리를 벌려 내부 집중력과 통제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고, 또 기존 금속노조의 지역연대투쟁의 전통을 반영하지 못해 단순한 연락사무소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통합 금속산별노조에서도 역시 기존 금속노조의 ‘사업장지회-지역지부-중앙조직’의 3층 구조가 가장 유효하다고 판단합니다. 만약 노조탄압에 대한 대응을 광역범위로 확대시켜야 할 경우가 발생한다면,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방침으로 진행해도 충분할 겁니다. 특히 조직 건설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장단위조직의 통제는 중앙의 방침에 의해 해당 지역조직이 하는 방식이 이후 조직의 발전방향을 고려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겠죠.

교섭구조의 문제

이제 교섭구조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교섭체계를 설계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첫째, 통합 금속산별노조에서도 ‘중앙교섭’은 어떤 경우에도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야 합니다.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이야말로 교섭구조 집중화과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이고, 때문에 이후 새롭게 전환할 여러 산별노조들의 모범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새롭게 출범할 금속노조가 지향해야 할 교섭구조의 ‘마침표’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완성차 대공장노조들이 새로 합류하는 통합 금속산별노조에서는 중앙교섭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요? 두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완성차 대공장노조들이 일제히 금속노조 중앙교섭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여 사용자들도 이 교섭구조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방안입니다. 이 경우 교섭과정에 노동조합 내부 조건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문제와, 더불어 대공장 사용자집단을 ‘힘으로’ 교섭석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문제에 부닥치게 되죠. 다음으로, 중앙교섭을 진행하되 동시에 금속노조 전체의 교섭과 ‘전략단위’의 교섭을 당분간 이원화시키는 방안이 입니다. 전략단위란 현재 금속연맹의 내부구성을 봤을 때 결국 ‘완성차노조’의 문제로 귀결될 겁니다. 일반기계금속, 조선, 전자, 철강 등 업종은 그 지향성 여부를 떠나 규모, 동질성 등에서 전략적으로 묶음 교섭을 모색하기에는 한계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의 단위를 특별하게 취급하는 경우 조직 내에서 동의를 구하기 어렵죠. 그리고 급박한 창립일정 속에서 이러한 구상이 막연한 방침으로 진행될 경우 아니함만 못 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지역단위 교섭’과 지역연대활동은 서로 다른 질의 실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연대활동이나 기타 정치활동 등 공간적 거리에 의해 규정되는 지역실천은 일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데 비해, ‘금속노조 차원의 지역교섭’이 과연 일상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설사 지역차원의 교섭이 필요한 경우에도, 교섭을 할 수 있게 하는 핵심동력은 물론 주로 그 지역 금속노조의 투쟁이겠지만, 실제 교섭의 주체는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역단위의 교섭은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중앙교섭이 진전되는 만큼, 또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조직력과 기능이 활성화되는 정도에 맞춰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교섭체계의 ‘골간’으로서 지역교섭을 상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셋째, 지회교섭의 규정력, 즉 기업별 교섭의 관성은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창립 이후에도 여전히 막강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금속노조가 산별사용자단체를 쟁취하기 위해서 6년여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교섭구조 집중화를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 자원투여가 필요합니다. 교섭구조 집중화가 진행될수록 지회교섭에 대한 금속노조의 통제와 제한이 커지게 됩니다. 그런데 교섭구조 집중화, 즉 중앙교섭의 실질적인 성과가 뒷받침되지 못 한다면, 이러한 통제는 곧 조직내부의 긴장과 갈등 요인으로 전화할 수 있습니다. 기존 금속노조의 경험을 보더라도 1천명 이상 대공장지회의 경우 이러한 부담을 거의 극복하지 못 했습니다. 산별전환 투표가 가결됐다고 상황이 저절로 나아지리라 믿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당위와 원칙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통합 금속산별노조 조직구조 및 교섭체계

이제까지의 검토를 토대로 구체적인 ‘주장’을 제시하겠습니다. 첫째, 조직구조는 대공장노조들의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 없이, 일괄적으로 지역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현재 조건에서 기업별노조의 해체, 즉 산별노조 전환은 조직과 교섭을 지역별로 재편한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죠. 그러나 계속해서 지적했듯이, 창립시기의 탄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교섭체계의 기업별 관성을 한꺼번에 뚫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조직구조부터 지역으로 재편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대공장의 기업별지부 인정은 ‘한시적’으로도 해서는 안 됩니다. 대공장의 기업별지부가 인정되는 순간 그 독립성은 적아지기보다는 커지거나 적어도 강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성차 대공장노조들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격한 변화가 아닐 겁니다. 각 지역으로 재편되더라도 당분간은 기업수준에서 결정될 내용에 대해서는 지역별 분산성을 극복할 만한 기업단위 교섭구조가 관성적으로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렇게 되었을 경우에 각 지역지부로 통합된 완성차의 공장지회들을 통제하는 역할은(교섭을 위해) 당분간 유지될 기업단위 집행부가 아니라, 통합 금속산별노조 중앙이 직접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둘째,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교섭체계는 중앙교섭의 확대강화를 목표로 하되, 완성차를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교섭단위’를 설정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당분간 조직구조와 교섭구조의 불일치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조건, 기업별노조 해체의 장기적 전망, 노동조합 내부의 편차, 교섭상대방인 기업들 사이의 편차 및 원·하청 구조, 자본의 성격, 조합원의 경험과 상태 및 노조 간 연대활동과 투쟁경험의 차이, 금속노조의 현 중앙교섭이 가지는 의의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자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이원화는 교섭구조 통일을 염두에 두는 ‘과도기’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사 이원화되더라도 전략단위의 교섭 역시 독립적인 조직구조를 갖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 전체의 조직구조 내에서 조율되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의 주장은 단지 노조 외부에서 제시하는 입장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이후 조직 내부의 합의과정을 통해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모습은 구체화될 텐데, 어쨌든 앞으로 남은 일정을 고려한다면 논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압축적으로, 그리고 보다 노골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검토를 이겨낸 의견만이 사람들의 지지와 조직건설의 원동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몇 가지 더 고려할 사항

몇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완성차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조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기존 정규직조직의 산하에 조직할 것인지 지역지부 산하에 배치할 것인지가 쟁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과거 경험을 가만히 살펴보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노조가 기업별로 조직된 것도, 다른 노조들이 금속노조의 지회로 조직된 것도 나름의 현실적 근거를 갖고 있죠. 어쨌든 사내하청조직에 대한 지원 방침이 통합 금속노조 차원에서 결정되고, 울산, 아산, 부평, 군산, 창원, 화성, 소하리 어느 공장에 존재하는 집행부도 이러한 방침에 순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구획단위 자체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겁니다.   

다만 비정규직의 임금, 근로조건, 고충처리 절차 등이 통합 금속산별노조 혹은 완성차 교섭단위라는 큰 틀에서 통일적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통합 금속산별노조에서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계약조건, 임금과 근로조건 등에 관한 전면적인 실사를 통해 요구사항을 공통으로 묶어내고 전체적인 합의를 만들어가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규직화’만을 고집할 수 없는 현실적 조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우리 안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임금의 통일을 기본급 또는 통상임금이나 총액임금 어느 수준에서 할 것인지, 사내복지는 어찌할 것인지 등 복잡한 구체적 쟁점들을 차근차근 합의해나가면서, 요구를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접근하는 방침이 필요합니다. 

둘째, 완성차 대공장조직들의 연대의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사실 그동안 완성차노조들은 상급단체의 지침을 지키는 ‘연대’는 수행했지만, 완성차 간 수평적 연대 혹은 주변 노동조합과의 실질적이고 상시적인 연대의 경험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질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절실하죠. 기업별체제에서와 달리 산별노조에서의 방침 이행은 시늉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반복적인 것입니다. 즉 집행부의 의지만이 아니라 조합원들을 그러한 방침에 끌어들이면서 조직화해야 하는 부담이 앞으로 더욱 커질 거라는 거죠.  

한편 이러한 ‘전략적 노력’이 배치되어야 하는 분야 중에 완성차-부품회사 간 이해와 요구를 조정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원·하청 문제는 지난 10여년 동안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통합 금속산별노조가 출범한다고 해서, 즉 완성차노조가 금속노조로 통합된다고 해서 똑 부러진 해결책이 나오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부의 이해충돌이 더 커질 우려마저 있죠. 조합원들의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을 피해나가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정교한 정책대안이 필요합니다. 중앙으로의 강한 집중성에 기반을 둔 전략적 유연함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금속산별의 역량강화와 현장조직의 재편

아마도 올 연말까지는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조직구조 및 교섭체계에 대한 논의가 각급 조직의 공식·비공식 단위에서 다양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강조하는 바지만, 이러한 논의가 밀도 있는 합의에 이르고 통합된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조직들이 자신들의 구상을 주머니에서 꺼내야 합니다. 특히 통칭 ‘○○파’로 분류되는 정치조직들이 서로 입장정리를 할 수 있는 토론이 비공개로라도 시급히 이뤄져야 합니다. 공식 조직에서 진행되는 몇 번의 회의로는 사실 합의를 집중시키기 어려울뿐더러, 이러한 논의를 통해 온갖 불필요한 추측들이 난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한편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현장조직들은 각 기업에 분산되어 있던 역량의 연계망을 강화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간 경쟁은 이제 통합 금속산별노조라는 전국수준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직적 준비를 각자 충실히 하자는 것입니다. 즉 통합 금속노조를 맞아 현장조직들의 연결망 역시 분산되어 있는 역량들을 좀 더 중앙조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협소한 기업단위 권력경쟁을 넘어 보다 넓은 범위에서 책임 있는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산별전환 이행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시작될 산별노조체제에서의 활동과 투쟁은 지금까지와 전혀 새로운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속에서 벌어질 정파 간 경쟁은 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의 제출과 현장실천의 영역에서 벌어져야 합니다. 금속노조가 6년을 버텨올 수 있었던 핵심적인 동력이 바로 조직의 ‘방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입에 단내가 나도록 밑바닥부터 전국 각지를 뛰어다닌 현장간부들의 ‘통일된 노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새삼스레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초청 토론 ]

forum_02.jpg한석호: 사회자께서 자유롭게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처음 보는 분들도 많고 해서 발언을 어떤 수위에서 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토론자로 섭외하실 때 ‘한 번 붙어보자’는 심정으로 오라고 해서 발제문을 꼼꼼히 읽고 공격거리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놀랄 정도로 쟁점이 형성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네요.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통합 금속산별노조의 안정적 정착과 발전을 위해서는 핵심적으로, 첫째 조직구조, 둘째 교섭체계, 셋째 교섭의제가 면밀하게 구조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조직구조를 보면, 선언적일지라도 최대한 ‘원칙’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원칙이란 김승호 동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기업별관성을 깨고 지역으로 재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직구조는 노사 간, 혹은 노정 간 문제처럼 거래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활동방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때문에 가능한 처음부터 비타협적으로 원칙을 관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교섭체계 역시 발표자가 말한 것처럼 중앙집중화를 지향하되 ‘현실’을 고려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기본적으로 산별전환의 문제의식을 흩뜨려놓지 않는 수준에서라면 시기와 조건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이 교섭체계의 영역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그 현실이 어디까지인지는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섭의제와 관련해서는 토론이 좀 더 진행되는 과정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을 전제로 발표자와 다소 이견이 있는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발표자는 통합 금속산별노조를 두고 진행되는 권력갈등이 도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 금속운동의 건강성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파 간 주도권 싸움은 언제든지 지나쳐질 수 있고, 특히 금속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민주노총 3파, 즉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가 형성된 진원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간 운동을 해온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외람된 말씀일 수 있지만 다른 연맹과 달리 금속은 정파갈등을 조직 내에서 정화할 수 있는 능력과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즉 어떤 논의가 다소 거세지더라도 그 경쟁과 충돌의 방향이 결국 누가 어떻게 ‘투쟁’을 잘 할 것인가, ‘조직’을 잘 꾸려갈 것인가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산별노조라는 집중된 수렴구조의 존재, 그리고 금속운동 특유의 전투성이 이러한 기풍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통합 금속산별노조를 둘러싼 정파갈등은 물론 경계는 해야겠지만, 비관을 이끌어내는 요인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둘째, 김승호 동지가 중앙교섭과 완성차중심의 전략단위 교섭 이원화를 제안했는데, 이는 상당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교섭체계를 유연하게 가져가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완성차 대공장노조 중심의 교섭단위는 원·하청 관계 등 내부적인 격차와 갈등을 더 벌릴 우려가 있다고 봅니다. 완성차끼리 복지수준이나 임금수준을 맞춰가는 교섭은 결국 완성차와 그 외 단위들 간의 격차를 벌리는 것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완성차 교섭단위는 원·하청 문제의 해결을 자신의 의제로 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상징적인 것이 되기 쉽습니다. 또 완성차 중심의 전략교섭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로 통합되기보다는 원심성과 독립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판해온 기업별노조의 관행이 업종단위에서 더욱 확대된 형태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입니다. 

연맹에서 조선분과를 담당했던 저는 종종 조선회사 사측 일부에게서 ‘업종교섭하면 우리 나간다, 준비돼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업종단위 공동교섭은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그 가능성을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가 교섭구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할 지점’은 차라리 완성차 사측을 어떻게 중앙교섭에 끌고 들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고 판단합니다.    

한편 여기서 더 나아가 통합 금속산별노조 내부에 ‘업종분과’ 혹은 한 업종을 종합적으로 담당하는 국·실 또는 담당자를 두자고 주장하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물질적으로 독립된 구조가 갖는 문제점을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심각하게 느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각 위원회별로 상근자들이 독립적으로 유지가 되는데, 독립된 순간부터 내부 통일성은 없어지고 자기 일만 하게 되는, 다른 사업이나 다른 실의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폐해는 집중된 구조를 가져야할 노조에서는 더욱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게다가 조선이나 철강, 기계금속의 경우에도 다소 문제가 되겠지만, 특히 10여만 명을 포괄하는 자동차업종에서 분과가 만들어지면 금속노조위원장과 자동차분과위원장, ‘이중 권력체계’라고까지 칭해질 수 있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 다양한 분들이 와 계시니 한마디 덧붙입니다. 내년에 진행될 산별 중앙교섭은 아주 복잡할 겁니다. 노조가 산별전환을 결의한 완성차대공장의 사측이 과연 교섭에 나올 것인가를 비롯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제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리라 봅니다. 동지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만, ‘불필요한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비공개든 공개든, 노·사·정이 미리미리 구체적으로 논의해서 교섭의제를 점검하고 정리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교섭을 앞두고 서로 몸 사리다가 어영부영 투쟁 상황으로 가는 것보다는 고용과 산업정책 등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어디가 화해할 수 없는 쟁점인지 분명히 하고 이를 명확하게 가다듬어 교섭과 투쟁의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사측에게 당부 드립니다. 이제 사용자단체도 만들어졌고 하니 기존처럼 물밑 작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식적인 소통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김승호: 토론자 말씀 잘 들었습니다. 먼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인데, 지역을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맥락에서 바라봐야할 필요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산별노조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지역 재편’을 연대의 원칙으로서 주장합니다. 지금 민주노총 역시도 대산별 구획과 지역중심의 조직구조 재편 등을 산별노조 건설방침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침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그 구체적인 경로에 대한 고민은 산하조직에게만 맡겨둔 채 방치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보라도 전진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역사적인 현실 속에 위치지어야 합니다.  

우선 사업장내 노조도 없었고 그 형성기부터 지역이 골간 단위였던 서구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체제에서 출발하는 우리에게 지역 재편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지금 산별노조의 상을 그리면서 지역 중심의 조직 재편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부분은 얼마나 고려되고 있을까요? 현재 공공연맹이나 사무금융연맹 등에는 업종단위 소산별노조가 여러 개 존재합니다. 그간 조직의 골간으로서 소산별노조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으며 공공연맹과 사무금융연맹이 산별노조 전환을 할 때 이 소산별노조들은 어떻게 배치되어야 할까요? 또 금속이나 화학 등 몇을 제외하면 지역연대가 가능할 만큼 지역근거와 조직력을 갖고 있는 단위는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민주노총 산별전환 지침은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요? ‘지역 원칙’은 이러한 현실적인 질문 속에서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완성차 중심성이 강화될 수 있겠다는 토론자의 지적에 대해서 저도 비슷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통합 금속산별노조로 결집된 13만여 조합원 중에서 이미 자동차가 10만여 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가만히 있더라도 조직, 교섭, 권력 모두에서 자동차가 저절로 중심에 서게 될 겁니다. 이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제가 던진 제안의 근저에 깔려 있는 문제의식입니다. 한시적이건 뭐건 대공장노조가 기업별지부로 재편된다면 중앙에서 교섭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비슷한 교섭력을 가지고 있는 조직끼리 상호 연관 고리라도 강화시켜 나가자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구조가 바뀌면 사람운명의 반이 바뀝니다. “무늬만 기업별노조 돌파”일지라도 가자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현 가능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통해 지난 산별전환 투표 시기 보여줬던 집행부의 리더십과 현장조직들의 행동통일이 빚어낸 에너지를 확대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 객석 토론 ]

질문자: ‘업종본부’를 제안한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노동자입니다. 요즘 머리가 아프네요. 발제자께 몇 가지 질문합니다. 첫째,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을 반대하셨는데, 만약 기업지부가 한시적으로 3년 동안 인정한다고 하면 3년 후 상황이 어떻게 될 거라고 예상하는지 궁금합니다. 둘째, 완성차노조의 전략적 교섭단위라는 것을 제안했는데, 사실 기존 금속연맹에서 이와 비슷한 ‘분과 파업’이라는 것을 진행했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전략적 교섭과 분과 파업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셋째, 비정규직 대응문제인데, 제 생각으로는 동일사업장 내에서 동일노동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지부 편재가 아니라 정규직조직 내 분회편성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승호: 첫 번째 질문에 답변 드리겠습니다. 현재 기업지부로 편재되어 있는 만도지부는 기업별노조로 있으면서도 지역사업도 열심히 하고 금속노조의 방침도 잘 따르면서 어느 조직 못지않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금속노조 6년의 경험을 거친 만도지부조차도 현재의 기업별지부를 쪼갠다고 하면 상당히 당혹스러워 합니다.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됩니다. 하물며 완성차 대공장노조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봅니다. 

둘째, 분과사업의 문제는 제가 금속노조에서 일할 때 당사자였기도 한데, 분명 지형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형식적으로 하더라도 통합 금속노조가 출범한 이후에는 과거 기업별체계의 연맹에서처럼 단위노조들이 멋대로 튕겨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조직적 강제력보다는 주체들의 적극적 의지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발제문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어떻게 편재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금속산별노조 차원에서 요구조건 및 행동을 어떻게 통일시킬 것인가가 더 중요한 쟁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질문자: 조직구조를 본조와 지회, 이층 구조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숫자도 별로 많지 않은데 노동조합의 조직구조를 유럽처럼 지역행정 조직체계에 맞출 필요가 있냐는 거죠. 중앙에서 지역사업의 통제가 가능할 거라는 판단아래, 지역지부를 남겨두되 연락사무소 역할만 주자는 주장입니다. 발제자는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승호: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못 했습니다.   
  
질문자: 저는 ‘업종주의자’ 소리까지 듣기도 합니다만, 노동운동이 대중의 이해와 요구 속에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업종본부체제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기업별지부는 한시적으로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기업별지부를 두느니 지역으로 재편하는 게 낫습니다. 기업별체계가 온존하는 속에서는 업종본부는 논의되지도 않을 것이고 설사 나오더라도 힘이 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흐름은 기업별지부 한시적 인정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현재의 금속노조 조직구조 및 교섭체계 논의는 ‘과도적 체제’를 상정해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3~4년 뒤 다시 논의될 시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적 교섭과 관련해 ‘이중 권력체제’의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이미 금속연맹이 사업을 할 때 현대와 기아, 혹은 현대 하나만 반대를 해도 함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중 권력체제’에 대한 우려는 금속노조 위원장이 전략적 교섭단위의 의장을 맡는다든지 하는 제도적 방식을 통해 다소 해소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발제자는 전략적 교섭단위로 완성차부문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적 교섭단위에서 어떤 의제를 다룰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전략적 교섭체계의 필요성을 확신할 텐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석호: 정말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교섭체계의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