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97년 날치기 처리된 이후 13년 만에 날치기 재판이라는 오명을 남기면서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노조법은 절차상 노사정 협상의 한 축인 민주노총을 비롯해 야당, 시민사회의 입장이 전면 배제되었을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재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악(改惡)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정 노조법 관련 이슈는 지난해 10월 말 노동관련 6개 단체 대표들이 노사정 회의를 시작하면서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간 한국의 보수신문들은 재벌과 현 정부에 편향적인 여론을 만들어 왔는데, 노조법 관련 사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수신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은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도, 혹여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때때로 보수신문들은 민주노총과 민주당 등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쪽을 향해 막말을 퍼부어대기도 했다.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는 6자협의체가 구성된 2009년 10월 말부터 노조법이 통과된 이후 시점까지 종합일간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경제전문지인 매일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 등 보수신문들의 보도태도를 중점 모니터하였다.
[ 보수언론의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동아일보가 “검찰 수사계획을 노조에 빼돌리는 두더지들”라는 제목의 왜곡 기사를 보도해 공무원노조에 의해 고발당하기도 했다. ▷ 미디어스 ]
1. 노사정 6자회의 전: 정부 원안고수 입장 반복 전달, 노조 입장 배제
정부는 당초 노사정 6자회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원안대로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보수신문들은 이러한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 내용을 기사 전반에 걸쳐 인용하였으며, 정부 측 주장에 대한 비판적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일보는 10월9일 <“노동운동 위해서도 전임자 無 임금 필요”> 기사에서 정부의 강행처리 방침을 주요하게 보도하면서, 정부 측 주장은 “노사문화의 선진화”이고 양대 노총의 주장은 “후진적 노사문화”라고 규정했다. 한국경제는 10월7일 <전임자 임금금지부터 시행하자>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노조법 시행이 미뤄진 이유가 “노조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양대 노총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보수신문들은 정부 뿐 아니라 재계의 입장도 주요하게 전달하면서, 노조법 개정이 곧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10월16일 <“일시적 혼란 감내하더라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야”> 기사에서 재계 관계자만의 입을 빌어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섰으며, 이해 당사자인 노동계의 입장은 철저히 배제했다.
6자 협의체를 앞두고 이미 보수신문들은 정부와 재계의 입장만을 반복적으로 전달하면서 양대 노총의 주장은 거의 싣지 않거나 한 두 줄 정도 형식적 수준에서 보도하는 편파성을 보였다.
보수신문들은 6자협의체에 노총이 참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총파업 명분 쌓기”용이라거나, “법 시행을 미루기 위한 핑곗거리”라는 식으로 진정성을 폄하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매일경제는 10월22일 <양대 노총 총파업 협박 될 말인가> 사설에서 대화 틀 자체에 대해 “시간낭비일 뿐”이라며 찬물을 끼얹었고, 한국경제도 10월29일 <노사정 6자회담, 법시행 미루는 핑곗거리 안돼야 >사설에서 “6자회담이 핑곗거리만 제공해주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자협의체 논의 시작 전부터 노조 측의 주장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다른 속셈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간 것이다.
2. 노사정 6자회의 시점: 민노총 6자회의 탈퇴 추측, 악의적 ‘소설쓰기’
노사정 6자회의가 열리던 시기에도 보수신문들은 여전히 정부와 재계 측 입장을 비중 있게 전달하면서, 한편으로 민주노총이 6자회의를 탈퇴하고 총파업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쏟아냈다.
노사정 6자회의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이해당사자들이 민주적 토론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보수신문들은 정부와 재계의 입이 되어 그들의 주장을 반복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11월11일 <“법 안 바꾸고 복수노조, 전임자 무임금 시행”>, 한국경제 11월8일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先시행 後보완’ 가닥> 기사 등은 임태희 노동부 장관의 인터뷰를 비중 있게 실으면서 양대 노총에게는 단 한 번도 그만한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보수 신문사들의 이러한 보도태도는 사실상 정부안의 일방적 관철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시기 민주노총에 대한 보수신문의 태도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6자회의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민주노총이 6자회의를 ‘요식행위’쯤으로 생각하며 성실히 대화에 임하지 않고 있는 듯 강한 인상을 주었다. 동아일보는 11월13일 <안 풀리는 ‘노사정 3각 함수’ … 해법보다 명분 쌓기 전락> 기사에서 ‘민주노총 선 탈퇴’, ‘한국노총 결별수순’이라는 가상이 시나리오를 보도했고, 한국경제도 10월30일 <노사정 6자대표 ‘뼈 있는 대화’ 속 첫 회의> 기사에서 정보원과 출처도 불확실한 “노동계 관측”이라는 용어를 이용해 “(민주노총이) 탈퇴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어떻게 해서든 민주노총이 먼저 6자회의 틀을 깨고 나가야 여론이 민주노총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자신들의 정파에 유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보도태도의 전형이며, 보수신문들이 흔히 써먹는 ‘소설쓰기’, ‘카더라 통신’의 못된 관행이 재연된 것이다.
[ 지난해 12월9일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그 이면과 언론의 작용’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서는 정부와 보수언론이 노동조합의 제약을 넘어 와해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 노동과 세계 ]
3. 12월4일 한국노총-경총-정부 합의안 타결 이후
복수노조 도입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한 노사정 협상이 12월4일 타결됐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야당 및 시민사회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채,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노동부 등 3자가 모여 협상한 결과라는 점에서 ‘야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보수신문들은 한국노총의 입장 변화를 ‘철학’과 ‘소신’으로 치켜세웠고, 민주노총을 향해서는 ‘직업 투쟁꾼’이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1) 한국노총 입장변화 ‘철학’과 ‘소신’으로 추켜세워
보수 신문사들은 한국노총의 기존 입장 철회를 대체로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의 “소신”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조선일보는 12월5일 <내년 시행 고수하더니… 임태희의 ‘돌변’>기사에서, 장 위원장을 두고 “노사정 대화를 다시 살린 주인공”으로 표현했고, 12월7일 <장석춘(한국노총 위원장)의 도박? 결단?> 기사에서는 한국노총 위원장의 말을 인용하여 야합을 “철학과 소신”으로 포장했다.
2) 민노총 = 노동권력, 직업 투쟁꾼, 강성노조 … 악의적 선전
한국노총의 입장 선회에 이어 3자 협상 결과가 발표된 직후, 신문들은 민주노총을 향한 악의적 선전을 시작했다. 민주노총을 필두로 한 반대진영에서 협상 결과를 두고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부터 ‘직업투쟁꾼’, ‘노동권력’, ‘강성노조’ 등으로 낙인찍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12월7일 <노조법 합의, 얽히고설킨 利害 봉합한 고육지책> 사설에서 민주노총을 향해 “머리띠 두르고 나서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직업투쟁꾼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아는 12월7일 <민노총은 노조가 아니다> 칼럼에서도 민주노총을 “파업을 무기로 좌파이념과 노동권력의 단맛만 누리는” 세력이라고 표현하면서 민주노총을 악의적으로 헐뜯었다.
이어 보수신문들은 노조 전임자들이 ‘정치투쟁’을 벌이는 ‘강성 노동운동’의 핵심이기 때문에 현재 노조 전임자가 ‘과도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조선일보는 12월5일 <월급받으며 정치투쟁… ‘직업 노동운동가’ 설 땅 잃는다> 기사에서 노조 전임자들이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정치투쟁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고, 12월7일 <중기(中企)노조엔 전임(專任) 1~2명 보장> 기사에서는 노조 전임자 활동을 “정치 투쟁에 앞장서는 폐단”으로 몰아갔다. 동아일보 역시 12월5일 <타임오프 적용 대상 - 상한선 놓고 노사 줄다리기 벌일 듯 > 기사에서, 노조 전임자들의 노조활동을 “파업, 시위 등 과격 투쟁”으로 묘사했다.
4. 추미애 환노위원장의 추가 개정 제안: 추가 개정이 ‘국가경쟁력’ 떨어트린다?
노사정 3자회의 결과에 대해, 이 시기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해관계가 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 개정론을 들고 나왔다. 보수신문들은 그때부터 추 위원장을 향해 독설을 퍼부어댔고, 추가 개정 논의는 곧 기업?국가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악법’으로 가는 길로 규정했다.
동아일보는 12월21일, <여야, 노조법 改惡해 기업충격-경제악화 부를 건가> 제목의 사설에서, 노동법의 추가 개정이 결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12월17일 <세종시?4대강 블랙홀에 개혁과제 줄줄이 표류>에서 추가 개정 반대를 “줄줄이 표류되고 있는 개혁과제”를 바로잡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으로 규정했고, 매일경제도 12월21일 <사설-국회 막바지에 다자회의 소집한 秋 위원장>에서 “후진적인 노사 관계를 바로잡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추가 개정론에 반대했다.
노조법 추가 개정안에 대해 보수신문들이 기업경쟁력에 이어 국가경쟁력까지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여론조작’일뿐더러, 이러한 주장은 그 어디에서도 명확한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거짓된 ‘말장난’에 불과하다.
5. 노조법 개정안 통과 이후
새해 들어 국회 날치기로 통과된 노조법에 대해 보수신문들은 ‘아쉽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동시에 쟁점이 된 타임오프제와 산별노조 교섭권 등에 대해 친기업적인 방향으로 세부내용이 결정되어야 한다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1) 추미애 위원장 노조법 직권상정: ‘독선’ 비난에서 ‘秋다르크의 뚝심’으로 말 바꾸기
보수신문들은 추 위원장이 추가 재개정론을 들고 나올 당시만 해도 추 위원장을 향해 갖은 독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결국 추 위원장이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채 환노위에서 법안을 통과시키자, 일제히 “추미애 반란”, “추미애 법”으로 표현하며 추켜세웠다.
조선일보 12월28일자 <노사 모두에 외면당한 ‘추미애 案’> 기사에서 “추미애 국회 환노위원장의 시도는 노사 양측에서 거부당해 실패로 끝났다”고 평했고, 한국경제도 12월28일자 <‘추미애 중재안’ 노·사 모두 반발… 정치논리로 ‘노조법 혼란’ 키워> 기사에서 중재안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30일 오후 노조법이 환노위를 통과하자 보수신문들은 기존의 태도를 전면 뒤집었다. 조선일보는 12월31일 <‘건전한 노사관계 활동’ 등 유급제한, 노조 전임자 수 줄일 법적 근거 마련> 기사에서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최소한의 원칙은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더 나아가 12월31일 <민주당 “秋위원장, 여당과 야합” 추미애 “민주당에 섭섭합니다”> 기사에서, “친정인 민주당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이라든지 “감정에 북받친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라는 표현을 통해 개정법을 추 위원장이 고뇌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추켜세우는 등 칭찬 일색이었다. 매일경제 역시 12월31일 <친정까지 ‘배신’ 추미애의 뚝심> 기사에서, 노조법을 통과시킨 것은 “秋다르크의 뚝심” 때문이었다며 치켜세우는 데 열심이었다.
2) 산별노조 교섭권: 산별노조 교섭권 유예는 소수노조 역차별?
개정 노조법에서는 전국 단위의 산별노조가 2년 6개월 간 교섭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보수신문들은 “소수노조에 대한 역차별”이라면서 공격을 가했고, “산별노조가 사용자를 압박할 수 있다”며, 민주당이 이를 들고 나온 것은 민주노총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근거 없는 주장도 펼쳤다.
중앙일보는 1월2일 <6월 말까지 단협 놓고 노사 충돌 예고> 기사에서, 기업 내 소수노조에 대한 역차별이 1년 동안 벌어지는 셈이라고 비판했고, 동아일보는 12월31일 <정치권의 노총 편들기로 ‘노사 선진화’ 더 멀어졌다> 사설에서 “산별노조가 사용자를 압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일경제 역시 산별노조의 분리교섭 요구가 위헌적 소지가 있으며 민주당이 이를 들고 나온 것은 민주노총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기사화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노조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기초한다. 애초부터 개정 노조법은 창구 단일화를 사실상 의무화 하고 있어, 그 자체로서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인정되고 있는 산별노조의 복수교섭이 금지될 가능성도 커 현장에서 지나친 마찰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 우려되고 있다. 보수신문들은 오롯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기사화할 뿐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이다.
3) 타임오프제: 노조에 불리한 타임오프제가 ‘안전장치’라며 화색
개정 노조법은 타임오프 항목에 대해서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두기로 하였다. 위원회에서 합의되지 않으면 공익위원들이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정부의 구상대로 항목을 정할 수 있는 제도적 모순을 담고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1월2일 <6월 말까지 단협 놓고 노사 충돌 예고> 기사에서, 이러한 내용을 버젓이 소개하면서도 ‘과도한 노조업무’를 제한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반겼다. 매일경제 역시 12월31일 <환노위 통과한 노조법안 이젠 입법 마무리를> 제목의 사설에서 타임오프제의 범위를 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했다.
6. 글을 맺으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3년간 시행이 미뤄져 온 노조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보수신문들은 언론으로서 민주적 토론과 이성적 판단의 장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재계와 현 정부의 편에 서서 노동운동과 노동자를 적대하고 불온시하는 일관된 보도태도를 보였다.
신문이 특정 정파나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파적 언론’이라고 해서, 개별 사안에 대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전달할 때 자사에 유리한 사실과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행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