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산별연맹들이 가입한 국제산별노조 조직 중 하나인 유니 글로벌 유니온(UNI Global Union)의 제4차 세계 총회가 2014년 12월7일부터 10일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총회에는 150개국에서 온 2천여 명의 노동조합 대표들이 참석했다.
유니(UNI)는 ‘Union Network International(국제노조네트워크)’의 약어로 전 세계 120개국 1천개 노조의 1,50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4개 국제산별노조들이 2000년에 통합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4개의 조직은 FIET(국제상업사무전문기술노련), CI(국제통신노련), MEI(국제미디어연예노련), IGF(국제출판노조) 등이며 80여 년의 오랜 전통을 가진 국제산별노조들이었다. 통합 직후에는 UNI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유니 글로벌 유니온(이하 UNI)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UNI는 스위스 니옹에 본부가 있고, 각 대륙별로 사무국을 두고 있다. 한국이 속한 아태지역은 싱가폴에 사무국이 있다. 한국에는 민주노총 소속인 보건의료노조, 사무금융연맹, 민간서비스연맹, 언론노조, 대학노조를 포함해 한국노총 소속인 금융노조, 전국우정노조 등 약30만 명의 조합원이 UNI에 가입해 있다. 이들 조직들은 UNI 가맹조직 한국협의회(UNI‐KLC)를 구성‧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세계 총회에는 대표단으로 10명이 참석했다.
다함께 노조 발전을 위해, 우분투
UNI 제4차 총회장에 내걸린 대회의 슬로건은 ‘다함께(Including You)’였다. 아프리카 말로는 ‘우분투(Ubuntu)’다. 우분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코사족과 줄루족 등 수백 개의 부족들이 즐겨 쓰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그 뜻은 ‘네가 있어 내가 있다’ 혹은 ‘함께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이다. 총회에 참석한 많은 연사들은 “우분투”로 발언을 시작했다.
총회에서는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 및 토론했다. 재정보고나 회계보고, 세계 집행위원 및 위원장‧사무총장 선출, 차기 총회 개최지 결정 등을 제외하면 토론의 주요 안건은 다음의 5가지였다. △노조 조직강화를 위한 당신의 참여(‘2014~2018 돌파 전략(breaking through)’), △넬슨 만델라 서거 1주년 추모와 아프리카 지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20년 투쟁 역사 회고, △우리의 경제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모두의 참여(자유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 건설을 위한 투쟁 과제), △우분투에 당신도 함께(중동 평화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행동 촉구), △새로운 노동 세상에 당신의 참여라는 주제들이다.
여러 주제 중에서 우선 논의된 것은 단연코 노조 조직강화였다. 현재와 같은 불평등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조직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강조되었다. 이는 ‘다함께 노조 발전을 위해’라는 말로 압축되었다.
UNI는 지난 2010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제3차 총회에서 합의한 4년간의 돌파 전략 계획이 세계 차원이나 모든 조직의 참여를 더욱 능동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향후 4년을 위한 조직강화 및 신규 노조가입 전략, 국제 협약 및 국제 연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인권에 대한 분석 및 돌파 전략을 재차 제시했다.
UNI의 사명은 부의 동등한 분배,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노조 확대가 필요하며 단체협상력을 높이는 등 노동조합의 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정치적 목소리는 계속 위축되고 있다. 가령 1980~2010년 사이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4개 국가 중에서 17개 국가의 단체협약 적용률이 감소했다.
UNI 최대 과제로 떠오른 ‘돌파 전략’
UNI는 모든 활동에서 노조 조직발전을 가장 중시하는 ‘돌파 전략(breaking through)’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키로 전환했다. 따라서 새로운 조합원에 대한 조직화와 노조의 조직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그동안 전략캠페인 조직화 조사 및 교육(SCORE) 부서를 설치하여 부문과 지역의 캠페인을 지원했으며 본부에서 지원하는 조직화 기금으로 각국에서 조직화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 거듭 강조됐다.
이를 위해 UNI는 먼저 글로벌기업과의 세계협약을 통한 조직화 전략을 제시했다. 이미 UNI는 다국적기업과 54개 세계협약(global agreement, 국제노동조합이 다국적기업과 체결하는 일종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이중 12개는 지난 4년 사이에 체결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협약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공포감을 줄이고 노조 조직화를 위한 공개적인 공간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UNI가 각국의 가맹 조직들과 함께 강력하고 효율적인 세계 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특히 UNI는 방글라데시에서 의류노동자를 위한 세계 협약을 체결한 것에 대하여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2013년 체결된 화재 및 건물 안전에 관한 방글라데시 협약은 UNI와 또 다른 국제산별노조인 인더스트리올(IndustriALL)이 함께 체결한 것으로 세계 굴지의 의류기업 100곳과 유통업자들에게 구속력을 갖는다. 이 협약은 노동조합은 물론 여러 NGO가 협력하여 얻은 결과다. 중국에 이어 세계의 의류 생산기지로 떠오르는 방글라데시는 지난 10년간 세계 굴지의 의류회사들이 몰려들어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노동자들의 임금은 한 달 평균 38달러에 불과하다. 심지어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은 대부분 산업용으로 지어지지 않은 탓에, 비상구가 통상 막혀 있어 화재가 나도 노동자들이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그동안 화재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특히 2013년 4월 스웨덴계 의료기업 ‘라나플라자’ 건물이 붕괴하면서 1,100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UNI는 가맹조직들을 설득해 월드컵 및 올림픽과 관련하여 다국적기업들이 사회적 책임(CSR)을 강화하도록 하며, 노동조합에 대한 공정한 대우가 이뤄지도록 캠페인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캠페인을 전개하는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가맹조직에 이를 교육하며, 가맹 조직 간에 조직화 및 노조 개혁의 모범사례를 공유할 것을 강조했다.
UNI는 또한 소셜미디어와 언론 사업을 확대하고 반 노조 캠페인에 대응하며 대안적 정보를 통해 노조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도록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개선할 계획을 밝혔다. 아울러 기업의 CSR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보고하였다.
<사진: UNI의 새 위원장으로 선출된 앤 살린 ©UNI>
우리의 경제를 되찾기 위한 싸움
다음으로 관심을 모은 주제는 ‘우리의 경제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모두의 참여’였다. 각국의 발언자들은 금융투기나 불평등한 세계에 대한 강한 우려와 비판을 쏟아냈다. 2010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상위 0.5%가 전 세계 부의 36%를 차지하는 반면, 전 세계 하위 70%는 부의 4.2%만을 갖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인구의 47%가 빈곤층이고 실업률은 25%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 중 하나다.
UNI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고 최저임금의 현실화, 남녀 간 임금 차별 해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경우 여성 노동자의 임금이 남성 노동자에 비해 24% 낮으며, 아프리카의 경우 34%나 차이난다는 지적도 있었다.
아울러 자유무역협정(FTA)에 삽입된 ‘사회적 조항(무역과 연계하여 노동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조항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UNI는 각국 정부에 진행 중인 각종 무역 및 투자 협정(TTIP, TPP, TISA, CETA)에 대하여 파산 선언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협약들은 규제완화와 민영화에 기초하며 실패한 신자유주의 이념을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조세협약 투쟁을 옹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기업에 대해 적절한 세금을 부과할 것, 금융거래세의 도입과 부유세‧상속세를 인상할 것을 주문했다. 그뿐만 아니라 UNI는 인간을 우선시하는 민주적인 기준, 공공의 이해를 보호하는 공정한 무역틀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요구했다.
평화를 위한 UNI의 노력
UNI가 2014년 8월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표단을 파견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또한 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자유 토론을 진행했다. 현재의 정국을 반영하듯 뜨거운 찬반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은 멈추어야 하고 이 정착촌에서 이익을 누리는 기업에 대해서는 노동을 제공하지 말아야 하며,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나오는 물건에 대해서는 불매 운동을 벌여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대표는 불매 운동은 가뜩이나 실업률이 높은 팔레스타인 노동자에게도 고통을 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결국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스라엘과 관련한 결의문이 채택됐다. 또한 폭력과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운동가들을 지지한다는 취지의 결의문과 대량 살상무기 제거, 핵무기 확산금지, 기후정의를 지지하는 내용의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또한 총회에서는 재정보고와 함께 매년 의무금을 인상한다는 안을 결정했다. 2015년부터 조합원 1인당 의무금을 2.20 스위스 프랑(한국 돈 약 2,453원)으로 하고 이를 매년 인상하며, 매년 조합원 1인당 0.25 스위스 프랑(약 278원)을 조직화기금으로 납부하기로 했다. 회의의 마지막 순서로는 세계집행위원 선임과 임원 선출이 있었다. UNI의 새 위원장으로는 조합원 수만 23만 명인 핀란드 서비스노조(PAM)의 앤 살린(Ann Salin) 위원장이 선출됐으며, 필립 제닝스(Philip J.Jennings) 현 사무총장을 재 선출했다. 투표 과정은 경선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도의 투표 절차 없이 빨간색 명찰을 들어 지지를 표하는 식으로 간단히 마무리되었다.
주제를 상징하는 영상과 환경보호가 돋보인 회의
발표자들의 여러 발언도 좋았지만 주제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관련 내용을 담은 짧은 영상이 상연되어 큰 감동을 주었다. 대략 8개의 영상이 사전에 준비되었는데 모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총회를 알리는 로고나 관련 포스터 등의 디자인도 세련되고 깔끔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번 총회는 환경보호를 위해 ‘종이 없는 회의’를 표방하며, 모든 문서는 인터넷이나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통역을 위한 자료 이외에는 사실상 어떠한 안건 자료도 회의장에 배포되지 않았다.
아울러 참석자들 중 대표단은 이름표에 함께 들어 있는 붉은색 카드를 높이 들어 보이는 방식으로 주요 안건에 대해 투표하였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외한 대개의 안건들은 지지 연설이 대부분이었고, 집행부에서 준비한 원안 그대로 통과되어 지극히 형식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한편 UNI 세계여성위원회 위원인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세계집행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세계 총회 주요 안건을 검토하였다. 아울러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세 차례 파업 투쟁과 진주의료원 재개원 투쟁에 대해 발표하였으며, UNI 요양 분과(UNI-Care)와의 별도 간담회도 진행했다.
제5차 UNI 세계 총회는 2018년 영국의 리버풀에서 열릴 예정이다. 세계 총회가 열리기 전에 대륙별로 지역별 총회가 열리는데 태평양지역 총회는 2015년 12월 네팔에서 개최된다.